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티오키아 공국 (문단 편집) === 연이은 통수가 죽음을 부르다 === 여기서 겪은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아르메니아 왕국]]과 [[다니슈멘드]], [[동로마 제국]]이 삼파전을 벌이는 킬리키아를 공격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129년에 동로마[* 혹은 친 동로마파 아르메니아 영주들에게서] 다섯 도시와 수십개 촌락을 빼앗았다. 분노한 요안니스는 노장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와 함께 안티오키아의 만행을 멈추러 진격하였다. 마침내 보에몽은 1130년 2월 동로마의 [[요안니스 2세]]에게 패배하여 평화조약에 서명했지만, 조약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킬리키아를 침공했다. 결국 아르메니아 영주들은 다니슈멘드 토후국의 에미르 가지와 결탁, 수천의 병력을 끌고 다시금 약탈을 일삼던 보에몽 2세를 타우루스 산맥의 험준한 지역으로 유인해 전사시킨다. 그의 목은 은도금되어 [[니키포로스 1세|술잔으로 만들어져]] 바그다드의 칼리프에게 바쳐졌다. 에미르 가지는 곧 풍토병으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그의 분투 덕분에 그의 후손들은 안티오키아 공작을 전사시키고,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공적으로 칼리프에게 '왕'의 칭호에 해당하는 말리크의 작위를 받았다. 강성해진 다니슈멘드 토후국은 훗날 [[요안니스 2세]]의 친정으로 강그라, [[카이사레아]] 등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아나톨리아의 맹주중 하나로 떠오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